프랑스 파리! 예술과 탐욕의 도시.

 

9월 29일. 파리는 맑고 쾌청한 하늘로 따뜻하게 우리를 반겨줬다.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을 찾아 다니는 배낭여행을 선호하지만, 신혼여행인 만큼 일정과 교통편을 챙기는 부담을 줄이고 그 시간을 우리 예쁜 신부에게 할애하기 위해 패키지 여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패키지여행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스위스에서 2박의 추가 자유여행을 준비했다.

 

근대 민주주의의 모태이며 패션과 현대 문화에서 세계의 중심인 파리는 그 명성에 걸맞지 않고 작고 낮은 도시다. 석회암 지대의 특성상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다고 한다. 유럽인들의 안정적인 삶이 도시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극도로 발달된 사회보장제도에 스스로의 현실에 안주하는 유럽인들의 특성이 도시 자체의 성장도 무의미하게 만드는 듯 하다.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일행과 합류하여 바로 박물관을 둘러봤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세계최고의 예술품을 직접 보고 만져보면서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시대의 찬란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인류문명 한가운데서 나의 존재를 찾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있어야 할 나라에 있지 않고 멀리 타국에 유배되어 있는 예술품들을 보면서 프랑스의 탐욕과 약탈의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서양사와 맥락을 함께하는 서양미술사, 그리고 절대왕정과 탐욕, 오만한 종교가 바탕에 깔려있는 서양 약탈사가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에 한 편 씁쓸했다.

 

 

이틀째, 몽마르뜨 언덕과 예술의 거리, 에펠탑, 개선문, 이어지는 상제리제 거리를 둘러보고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향했다. 첫 날과는 달리 잔뜩 흐린 날씨에 비까지 부슬부슬 내려서 더 춥게 느껴졌다. 우기로 접어드는 서유럽의 전형적인 날씨를 체험해 보는 것도 좋긴 했지만, 역시 맑고 따뜻한 날씨가 그리웠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1634년 루이13세의 사냥궁으로 건축되었으며 1661년부터 20년간 루이 14세에 의해 증개축되었으며, 1682년부터 1789년 프랑스 대혁명까지 107년간 공식적인 왕궁으로서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루이 14세는 일개 대신인 포개의 보 르 비콩트 성이 왕궁보다 화려한데 분개하여 증축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베르사이유 궁전은 서유럽 수많은 왕궁의 모델이 되어 베르사이유 이후 지어지는 왕궁은 모두 이 왕궁을 모델로 지어졌다고 한다. 베르사이유는 수많은 예술품과 섬세한 조각품들로 장식되어 웅장함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건물 외에도 혁명이전 2400만평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정원까지 프랑스 왕국의 힘과 위용을 그대로 투영해 주었다.

 

저녁을 먹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세느강의 유람선을 타러 갔다. 서울의 한강처럼 파리를 있게 한 세느강의 아름다움에 대한 수많은 찬사를 듣고 잔뜩 기대해서였는지 모르지만 한강의 1/3 정도 될까 싶은 생각보다 작은 강폭에 약간 실망했다. 하지만, 좌우로 강둑이 그대로 건물 외벽이 되는 유럽풍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섬세하면서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다리들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색을 잃어가다가 급기야 소박한 조명으로 장식돼 가는 모습이 실망감을 기쁨으로 바꿔주었다. 해가 저물어 기온이 더 내려가고 강바람이 제법 추웠지만, 그렇다고 못 견디고 여객실로 들어가버린 신부가 야속했다는 게 약간의 흠으로 남는다. 선착장에 도착할 무렵 멀리 파란 조명에 흰색 반짝이 조명으로 빛나는 에펠탑이 밤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프랑스가 올해 EU의 의장국이 되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EU 깃발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유람선 투어를 마치고 에펠탑으로 향했다. 낮에 가이드를 따라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인다는 palace de chaillot에서 보면서 재질과 생김새의 기이함 때문에 Landmark로서는 오히려 더없이 제격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가까이 도착했을 때 다리 사이에 왕복 4차선 차도가 있을 정도의 거대한 규모에 놀랐다. 에펠탑을 올라가려면 한 두 시간 기다리는 건 보통이라는데 추운 날씨 때문인지 요일 때문인지 한 번도 안 기다리고 초고속으로 3층까지 올라갔다. 가이드가 그렇게 빨리 올라간 건 처음이라고 한다. 고층건물이 없는 파리의 야경을 300m 높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세느강과 오밀조밀 뻗어있는 거리들과 네온사인 없는 나지막한 건물들은 분명 상하이나 홍콩의 현란한 야경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과는 다른 수수한 면에서 오히려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쁘렝땅 백화점에서 잠시 쇼핑하고, 시청앞 광장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노틀담대성당으로 향했다. 노틀담의 꼽추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친근한 이 성당은 1163년부터 건축이 시작된 고딕양식의 대표적 성당으로 직선과 대칭 속에 수많은 조각과 장식들로 화려함을 더해 보는 이를 압도한다. 1804년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있었고, 1944년 파리 해방을 감사하는 국민예배가 있었을 정도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성당이지만 프랑스혁명때 심하게 훼손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성당 안에는 관광객을 위해 2유로를 내고 촛불을 밝히고 소원을 빌 수 있는 초와 촛대를 따로 마련해 놓았다. 개인적으로 천주교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프리카 기아를 돕는다기에, 또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시작점에서 바라는 소망을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 초를 밝혔다.

 

퐁피두센터 옆 노천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 하면서 파리 여행을 정리했다.

 

 

자연이 내린 축복의 땅 스위스.

 

10월 1일 오후 떼제베를 타고 스위스로 향했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솟은 데라고는 없는 완만한 능선에 끝없이 펼쳐지는 들판이 무료할 때쯤 출발하기 전에 산 손바닥보다 큰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우고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베른에서 인터라켄 기차를 갈아타고 밤 11시쯤 캄캄한 인터라켄 역에 도착, 오후 늦게 출발하여 밤 늦게 도착했으니 시간적으로 별로 손해 본 느낌이 안 들었다. 여행 중에 밤기차는 낮 시간의 손해 없이 여행 범위의 제한을 없애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밤기차를 좋아한다.

 

새벽에 눈을 떠서 –시차 때문에 오후엔 항상 졸리고 새벽엔 항상 깬다- 창 밖으로 본 인터라켄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조용하면서 아담하고 너무 깨끗하여 빨리 나가서 구경하고 싶게 만들었다. 호텔을 나서자마자 저 멀리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구름에 가려 수줍은 듯이 살짝 모습을 드러낸 만년설이 반겨주었다. 온 몸을 휘감는 기분 좋은 흥분이 가이드의 설명을 지루하게 만들었다.

 

 

 

융프라우 산은 4158m의 알프스산맥에 속한 산이다. 1896 ~ 1912년에 3454m 지점인 융프라우 요흐(산마루가 움푹 들어간 곳)까지 암반에 터널을 뚫고 철도를 놓고 전망대를 만들었다. 이 요흐까지 가기 위해서는 인터라켄에서 출발하여 중간에 기차를 두 번 갈아타야 한다. 일행 모두 가는 내내 창 밖을 보면서 낼 수 있는 모든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이디가 금새 뛰어나와 노래할 것 같은 스위스 시골 풍경들이 끝날 무렵 펼쳐지는 빙하에 의해 생긴 빙식곡(U자곡), 위쪽에는 만년설이 덮여있고, 아래쪽은 푸른 초원에 듬성듬성 집들이 박혀있는 풍경, 만년설에 바로 아래 더 이상 수목은 사라지고 갈색 고산식물들로 덮인 지형까지, 터널 중간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절벽 아래의 만년설과 어우러진 푸른 숲까지 한 시도 창 밖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른 하늘과 발아래 펼쳐진 운해, 날카롭게 깎아놓은 검은 바위와 그 바위 위에 쌓여있는 하얀 눈, 넓은 계곡을 가득 채운 빙하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갈라진 검은 크레바스까지 그들은 그저 거기에 있을 뿐이지만 그 조합을 아름다움으로 느끼는 인간에게는 그저 거기에 있어줘서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컵라면 하나 먹고 엽서 한 장 써 붙이고 짧은 해를 아쉬워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미트퐁듀가 기다리고 있어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지만은 않았다. 인터라켄을 끼고 흐르는 초록색 강가를 따라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게 꾸며놓은 산책로와 마을을 거닐면서 여유로움과 평안을 한껏 만끽하고는 퐁듀에 와인 한 잔으로 저물어가는 해를 아쉬워했다.

 

여행사 상품은 여기 인터라켄까지가 마지막이었지만,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 출발 전에 2박을 연장했었다. 너무 잘했다.

 

 

다음날 아침 일행들은 귀국길에 오를 때 전날 사 놓은 스위스 패스 3일권과 여행사에서 준비한 점심 도시락을 따로 챙겨서 우리들만의 배낭여행길에 올랐다.

 

숙박은 체르맛에 예약했지만 중간에서 갈라지는 로이커보드를 가기로 했다. 노천 스파가 있다고 해서다. 스피즈에서 갈아타고 알프스로 들어가 브릭에서 또 갈아탄 다음 리욱에서 버스로 30분 들어갔다. 거대한 빙식곡을 구불구불 기어오른 다음 작은 빙식곡을 따라 들어가면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로이커보드가 나온다. 가는 동안 내내 펼쳐지는 절경 때문에 또 한 번 스위스가 부러워졌다. 한국의 산과 계곡도 아름답지만 규모의 차이에서 오는 순간적이고 압도적인 감동은 따를 수가 없다.

 

 

 

로이커바드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면소재지 정도 크기의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3면이 깎아지른 절벽과 절벽 위의 눈, 절벽 아래쪽의 초식지대가 펼쳐진 숲.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 그 아래 조용하고 깨끗하면서 삶에 찌들지 않은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건물들까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거기에다가 만년설을 보면서 즐기는 노천 스파까지. 가을날씨 정도로 춥지는 않았지만 스파를 즐기는 동안에 조금이지만 눈이 내려 색다른 경험을 했다. 크림소스 스파게티와 피자 한 판(1인분치고는 너무 크지만 다들 그렇게 먹고 있어서 시켰다)을 먹고, 해질 무렵 로이커바드를 나와 리욱에서 기차를 타고 비스프에서 환승, 체르맛으로 향했다.

 

체르맛은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로고에 나오는 눈 덮힌 봉우리 마테호른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또 하나 만년설에서 즐기는 사계절 스키. 숙소가 마테호른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탑승장 근처여서 아침부터 스키와 보드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보드를 타려면 약 14만원 정도 든다고 한다. 만년설에서 타는 보드를 기대하면서 들뜬 마음에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갔지만 잔뜩 찌푸린 날씨가 발목을 잡았다. 스키장 근처가 초속 27m의 강풍으로 보딩이 불가능하단다. 한 참을 기다리다가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서 체르맛을 둘러보았다. 스위스는 어딜 가나 모든 건물의 발코니에 꽃으로 장식을 해서 멀리 보이는 만년설과 푸른 숲과 어우러져 건물이 한층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눈발이 날리던 날씨는 점심을 먹을 즈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게 개었다. 식당 밖으로 나온 순간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따뜻한 햇살아래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마테호른이 멀리서 온 여행객에게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듯 다가왔다. 다음 숙소가 루체른인 관계로 아쉬움을 여운으로 간직하고 돌아섰다.

 

오후 늦게 기차를 타고 온 길을 거슬러 스피즈를 거쳐 베른에서 루체른행 기차로 환승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피어발트슈테터 호수와 이어지는 로이스강의 카펠교, 슈프로이어교와 구시가지를 둘러보았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맑은 호수와 멀리 보이는 눈덮힌 산, 거기에 중세시대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룬 풍경은 흐르는 시간이 원망스럽게 했다. 하지만, 역시 시가지는 융프라우나 마테호른, 기차와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본 스위스의 자연이 주는 감동에는 미치지 못했다. 루체른에서는 리기, 필라투스, 티틀리스 산으로의 트래킹이 가능하지만, 2시 취리히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돌아섰다.

 

 

돌아오는 길에 와이프와 프랑스를 제외하고 스위스만 6박8일 일정을 잡았어도 좋았겠다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역시 그랬으면 프랑스가 아쉬웠을 것 같다. 보고나니 그런 것이지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도 스위스에서 추가로 2박을 해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된다.

 

다음에 꼭 다시 오자는 약속을 하면서 취리히 공항에서 암스테르담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